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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

어떤 개인 날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에서 '어떤 개인 날'을 들으며....

 

매주 토요일이면 넓고 싱그러운 가원미술관에서 연필소묘, 수채화 삼매경에 빠진다.

잔잔한 클래식이 우리 교실 구석구석까지 찰랑찰랑 물결치고, 예닐곱 요즘은 열명 안팍의 그림 이웃들이 모인다.

 

봄이면 온갖 새순이 쫑긋쫑긋 올라와 미술관 정원에서 자기들끼리 꽃 잔치를 연다.

초여름이면 후두둑 까만 벗지가 나무계단으로 떨어지고, 소나기 내리는 7월엔 유리창 빗소리가 시끌벅적하다. 감나무 잎 붉게 물들 때, 우리들은 전시회 준비한다며 머리 맞댄다. 잔디마당 동그란 탁자에서 따듯한 가을 햇살 받으며 삼삼오오 웃음꽃 필 때면 빨간 옛날 우체통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잡담을 들어준다.

서리 내리면 우리는 슬슬 군고구마의 달달한 맛에 빠지는데, 그림 그리려 미술관에 가는지 아니면 고구마 까먹으로 가는지 사실 좀 모호해진다.

 

전시회 전후로 우린 각자의 가족들도 자주 대동해가며 뭐가 재미있는지 이래저래 파티를 만든다. 꼬마 쌍둥이 아가씨부터 새신랑, 노신랑, 초로의 부인들까지 그림 좋아하는 남편, 아내를 둔 죄로 끌려 나오다, 이젠 자발적으로 나타나주신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고..

미술관이 너무 좋아서 아내를 등록시키고 남편은 청소부를 자처하며 우리 주변을 맴돈다.

헬리콥터 남편? 우리 그림 배우는 학생보다 정확히 1.78배 더 열성파!

우리 출석률보다 당연히 더 높고, 전시회에 대한 열정도 더 높고, 아내가 그림 공부하는 동안 일층 카페에서 독서, 나머지 시간은 마당청소 교실청소 카페청소...

틈틈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해주는 든든한 우리의 후견인이다.

 

눈 내리는 겨울 밤엔 우린 가원 카페에 자동으로 모인다.

난로를 밝게 켜고 동그랗게 모여 치킨과 와인 한 잔!

항상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은빛 머리의 관장님과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는 사모님.

13년전 이 자리에 당신께서 직접 미술관을 지어서 여태껏 가꾸어오셨다.

강렬한 햇살을 갈망하는 듯한 스페인 분위기의 웅장한 건물, 가구 전문가이신 관장님은 80~90년대에 사업으로도 크게 성공하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잔디 마당에서 현관 쪽으로 걸어오면 아늑한 정원을 지나 카페로 이어진다.

넓고 기품 있는 실내에는 멋들어진 가구와 소품들, 항상 누군가의 새로운 그림들이 카페 벽면에 걸려 우리의 감상을 기다리고 있다.

건물 2층엔 관장님과 사모님의 상설 전시실이 나뉘어있고, 1층엔 일반 전시실이 큼지막하게 준비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그림 놀이터, 정원 마당 왼편 아래쪽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나타난다. 여름철 특히 시원하다. 8월초 전국 해수욕장 계곡은 인산인해를 이룰 때, 우리는 초록의 유리창을 통해서 매미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멜로디에 몸을 맡기고 이젤과 대화를 나눈다.

 

은빛 관장님은 항상 우리 옆에서 그림 지도를 해주시는데, 때론 얘기가 꼬리를 물고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우리는 간혹 관장님의 조언을 살짝 무시하고 내 멋대로 쓱쓱 진도 나간다.

어떤 날은 간식시간이 금방 다가오고, 어떤 날은 왜 그리도 공부시간이 지루한지…

 

그러나, 이건 별 문제도 아니다.

왜냐면 우리의 땡땡이는 언제 어디서나 보장된 늦깎이 학생들이기에...

일층 까페엔 항상 우리의 스폰서이자 고문이자 더 학생인 우 집사님이 대기 중이다.

지루하다 싶으면 1층 카페에서 사모님까지 셋이서 얘기 나누다 보면,

간식 먹으러 내려오라는 전화벨이 울린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대표곡 '어떤 개인 날'을 듣는다.

슬픈고 애절한 노래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뚝 끊어져버리는 노래의 끝 부분...

우리 미술 선생님도 벚꽃 활짝핀 봄날 밤에 느닷없이 생을 마감하셨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어느 개인 날’마지막 소절처럼..

이용 화백님... 우리들의 마지막 선생님..

저 세상에서도 가원미술관을 돌봐주시고, 우리들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주소서

우리는 님의 마지막 제자였습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진정 길고 깁니다.

 

가 원 미 술 관

 

만히 생각하면 꿈같은 나날이라

컨데 그시간을 조금만 돌려주면

완성 나의작품 꼼꼼히 지도받고

한잔 앞에두고 마지막 하직인사

장님 꽃비속에 천천히 멀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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